김영연의 그림책읽기(21)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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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그림책읽기(21)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2.06.0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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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마라옹 뒤발 그림/이하나 옮김/그림책공장소)

 

뭐니뭐니해도 여름은 수박의 계절이죠. 오늘은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마라옹 뒤발 그림/이하나 옮김/그림책공장소)을 소개합니다.

먼저 앞표지를 살펴보면 수박의 속살 같은 붉은 색을 배경으로 아주 커다란 수박 한 덩어리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농부인 듯한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런 눈으로 수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입고 있는 바지도 수박무늬입니다. 얼마나 수박을 사랑하는 사람인지요. 그리고 수박 위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자세를 살짝 낮추고 앙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박이 얼마나 큰지 아시겠죠?)

그런데 책제목이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요? 완벽한 수박밭이라니요? 도대체 완벽한 수박밭이란 어떤 밭일까요? 그래서 원제를 찾아보았더니 앙통의 사랑 밭’(Le Champ d’Amour d’Anton)이라고 합니다. 앙통의 완벽이란 곧 사랑이네요.

표지를 넘겨봅니다. 마치 수박을 반 가른 듯이 면지 전체가 아주 먹음직스러운 수박 속살 색입니다. 여전히 수박 한 덩이가 놓여 있고, 길게 뻗은 줄기를 따라 책장을 몇 장 넘기니 그제야 수박 속살 색 글씨로 제목을 쓴 속표지가 나옵니다. (요즘은 이렇게 겉표지와 속표지 사이에 프롤로그나 예고편처럼 장면이 추가되는 그림책들이 종종 있습니다.)

 

완벽이라는 강박

드디어 기다리던 첫 문장을 만납니다.

앙통의 수박밭은 완벽했다. 누군가 수박 한 통을 훔쳐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앙통은 그 빈자리를 볼 때마다 수박밭 절반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가지런히 줄지어 놓여있는 커다란 수박밭 한 가운데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떨군 앙통이 서 있습니다. 저런, 앙통이 완벽한 수박 한 통을 도둑맞았군요. 얼마나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었다면 완벽한 수박밭이었을까요? 여러분도 이처럼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부운 수박밭이 있었겠지요?

도둑맞은 빈자리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수박이 있던 자리는 움푹 패어 있었고, 앙통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옵니다. (작가는 눈동자를 수박으로, 눈물은 붉은 수박즙으로 표현했네요.) 둘로 쪼개진 수박에서 마치 눈물이 폭포처럼 콸콸 쏟아집니다.

도둑맞은 그 수박은 다른 수박들보다 훨씬 탐스러웠을 것이다. …… 분명 어떤 수박보다 완벽했을 것이다.”

여기 또 완벽이란 표현이 나오는 군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의 애착이 대단합니다. 누구의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됩니다. 어쩌면 자신이 애정하는 수박밭을 지키지 못한 자책이었을까요? 앙통에게 줄맞춰 서있는 완벽한 수박밭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 저는 밝은 태양 아래 질서정연한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에서 오히려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앙통은 꿈을 꿉니다. 생쥐들이 수박을 갉아먹는 꿈을, 그리고 마침내 훔친 수박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범인, 곧 자기 자신을 꿈에서 마주합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을까요?

해질 무렵, 앙통은 수박밭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수박밭을 지키기로 합니다. 깊은 밤, 동물들의 소리만 들리고, 앙통의 눈꺼풀은 점차 무거워집니다. 앙통은 더 이상 수박밭을 지키고 싶지도 않고, 악몽을 꾸고 싶지도 않고, 푹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커다란 수박에 얼굴을 파묻고,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합니다. 허공에 작은 수박들이 떠돌아다닙니다. 이제 그만 완벽이란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을까요?

 

완벽한 자유로움

이때 밤의 무법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길고양이들이입니다. 앙통의 수박밭은 순식간에 뒤죽박죽, 폭탄이라도 맞은 듯 엉망진창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그야말로 고양이들에게는 신나고 완벽한 밤이었지요. 공중으로 솟구친 수박 한 덩이가 달에 박혀 놀란 눈이 되기도 하고, 수박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아침, 앙통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리고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앙통은 이제 더 이상 수박밭을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면 더 이상 도둑맞은 수박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앙통은 이제 허전하거나 슬프지 않다. 수박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니까.”

앙통은 완벽이라는 강박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 자유로움이라는 새로운 완벽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완벽이란 어떤 것인가요?

여러분이 사랑과 정성을 쏟은 수박밭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도둑맞은 수박은 무엇인가요?

 

 

  • 밖에 수박과 관련된 그림책

<수박수영장>(안녕달 글그림/창비) 뜨거운 여름, 커다란 수박 안에 들어가 수영을 한다면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할까요? 아이부터 어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까지 한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노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김장성 글/유리 그림/이야기꽃) 농부가 수박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수박이 열릴 때 까지의 과정을 담아냈다. 우리가 수박을 쉽게 사먹기 까지는 노웁의 고단한 노동과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했다.

 

<개미의 수박파티>(다무라 시게루 글그림/서지연 역/비룡소) 무더운 여름날, 아주 작은 개미가 커다란 수박을 만나 집으로 가져가려한다. 개미들이 아무리 힘을 모아도 꼼짝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수박을 옮길 수 있을까?

 

<수박>(김영진 글그림/길벗어린이) 가족들과 함께 수박을 먹던 그린이는 먹다 남은 수박씨를 화분에 심어 수박을 키우려 한다. 아빠는 심어도 소용없을 거라고 말하고, 그린이는 정성껏 수박화분을 돌본다. 과연 그린이의 바람대로 수박이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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